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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추천/책리뷰]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55년 정음사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 저자 윤동주 / 더스토리
1. 오늘 역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날이죠. 5·18 민주화운동이 있었던 날입니다. 오늘은 뉴스를 많이 봤어요. 문재인 대통령의 5·18 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식 기념사도 들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훔치는 것도 보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의 의미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했습니다. 역사에 무관심했던 지난날에 대해 반성하고, 나라를 위해 희생까지 감수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숭고한 마음에 감사하는 날입니다.
2. 역사적인 책을 떠들어 보고 싶은 하루였어요. 그런데 책장에 마땅한 책이 없더군요. 그래서 조금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올해 제 생일에 친구가 선물해 주었던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가 눈에 들어왔어요. 시대가 다르지만, 나라에서 발생한 어려움으로 괴로워한 시인이기 때문에, 사실 미니북이라서 버스로 이동할 때 다 읽었지만, 다시 한 번 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책상에 두었습니다. 마지막에 나와 있는 윤동주 시인의 연보를 보면서,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서 다시 읽고 싶기도 했고, 여러 번 곱씹어야 다가올 만한 글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다시 읽었어요. 다시 봐도 비극적이긴 합니다만, 윤동주 시인이 비참한 느낌의 시만 쓴 건 아니라는 점을 모두가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사랑하는 여자에 대한 시도 있어요.
3. 많은 사람들이 감동 깊게 보셨을 무한도전 <위대한 유산>에서 설민석 선생님은 그런 얘기를 하셨었죠. 윤동주 시인은 총, 칼을 들고 밖으로 나가 싸우진 못했지만, 늘 자신을 부끄러워 했던 사람이라고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있는 많은 시들을 보면서 그 사실을 많이 실감했어요. 사실 윤동주 시인의 시는 아주 유명한, '서시', '쉽게 쓰여진 시'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많은 시 속에서 윤동주 시인의 괴로움을 들여다볼 수 있었어요. 수많은 밤을 자신을 부끄러워 하면서 보낸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개코와 광희가 부른 '당신의 밤'이 많이 생각났어요. 그땐 몰랐는데, 제목이 정말 와닿았습니다. 지금 그 곡을 다시 듣는데, 가사 하나하나가 다 들어와요. 윤동주 시인에 대해서 얼마나 공부하고, 얼마나 그때의 감정을 담으려고 노력했는지 보이는 느낌입니다.. 여전히 정말 멋진 곡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오혁이 부르는 후렴구는 시 '별 헤는 밤'의 일부입니다.)
4. 인상적인 시를 메모하기 위해서 메모장을 켰는데, 너무 많아서 결국 페이지만 적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시의 ¾은 되는 것 같아서 여기에도 다 못 담을 것 같습니다. 앞부분에 있는 중요 시들 위주로 밑에 소개할게요.
5. 아. 그리고 네이버 책 소개에 조금 잘 나와 있어서 일부 발췌해 봅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된 작품들은 윤동주의 뿌리 깊은 고향 상실 의식과, 어둠으로 나타난 죽음에의 강박관념 및 이 모두를 총괄하는 실존적인 결단의 의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특히 작품 전반에 두드러지는 어둠과 밤의 이미지는 당시의 분위기를 반영하듯 절망과 공포, 그리고 비탄 등을 드러내어 그의 현실 인식이 비극적 세계관에 자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 모든 특징은 서정성에 기반하는데, 이는 지금까지 독자들이 윤동주의 작품에 깊은 인상을 받게 하는 가장 큰 특장점이 된다. 더불어 윤동주는 기독교 정신과 독립에 대한 열망, 투사가 되지 못한 자괴감과 아이들의 눈높이로 본 세상에 대한 묘사까지도 시에 녹여냈다.
17p
서시(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우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11
20p
자화상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1939.9
23p
눈 오는 지도
순이(順伊)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 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내려, 슬픈 것처럼 창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위에 덮인다. 방 안을 돌아다보아야 아무도 없다. 벽과 천정이 하얗다. 방 안에까지 눈이 내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버린 역사처럼 홀홀히 가는 것이냐, 떠나기 전에 일러둘 말이 있던 것을 편지를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 밑, 너는 내 마음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냐, 네 쪼고만 발자욱을 눈이 자꾸 내려 덮여 따라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욱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욱을 찾아 나서면 일 년 열두 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내리리라.
1941.3
24p
돌아와 보는 밤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불을 켜두는 것은 너무나 피로롭은 일이옵니다. 그것은 낮의 연장이옵기에ㅡ
이제 창을 열어 공기를 바꾸어 들여야 할 텐데 밖을 가만히 내다보아야 방 안과 같이 어두워 꼭 세상 같은데 비를 맞고 오든 길이 그대로 빗속에 젖어 있사옵니다.
하루의 울분을 씻을 바 없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마음속으로 흐르는 소리, 이제 사상(思想)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 가옵니다.
1941.6
25p
병원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ㅡ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33p
무서운 시간
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
가랑잎 이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인데,
나 아직 여기 호흡이 남아 있소.
한번도 손들어 보지 못한 나를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어디에 내 한몸 둘 하늘이 있어
나를 부르는 것이오.
일을 마치고 내 죽는 날 아침에는
서럽지도 않은 가랑잎이 떨어질 텐데……
나를 부르지 마오.
1941.2
37p
바람이 불어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 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
1941.6
43p
길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1941.9
45p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랜시스 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이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1941.11
56p
쉽게 쓰여진 시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1942.6
68p
못 자는 밤
하나, 둘, 셋, 넷
…………
밤은
많기도 하다.
71p
아우의 인상화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에 멈추어
살그머니 애띤 손을 잡으며
"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운 진정코 설운 대답이다.
슬며시 잡았던 손을 놓고
아우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본다.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젖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103p
이런 날
사이좋은 정문의 두 돌기둥 끝에서
오색기와 태양기가 춤을 추는 날,
금을 그은 지역의 아이들이 즐거워하다.
아이들에게 하루의 건조한 학과(學課)로
해말간 권태가 깃들고
'모순(矛盾)' 두 자를 이해치 못하도록
머리가 단순하였구나.
이런 날에는
잃어버린 완고하던 형을
부르고 싶다.
1936.6
110p
비둘기
안아보고 싶게 귀여운
산비둘기 일곱 마리
하늘 끝까지 보일 듯이 맑은 공일날 아침에
벼를 거두어 빤빤한 논에
앞을 다투어 모이를 주으며
어려운 이야기를 주고 받으오
날씬한 두 나래로 조용한 공기를 흔들어
두 마리가 나오
집에 새끼 생각이 나는 모양이오.
1936.3
131p
눈
지난밤에
눈이 소오복이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한다고
덮어주는 이불인가 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내리지
1936.12
135p
편지
누나!
이 겨울에도
눈이 가득히 왔습니다.
흰 봉투에
눈을 한 줌 넣고
글씨도 쓰지 말고
우표도 붙이지 말고
말쑥하게 그대로
편지를 부칠까요?
누나 가신 나라엔
눈이 아니 온다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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