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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추천/책리뷰] 카피책 (당신이 쓰는 모든 글이 카피다) / 정철 글, 손영삼 그림 / 허밍버드
1. 부끄러운 얘기지만, 책을 참 오랜만에 읽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완독'이라는 걸 정말 오랜만에 했습니다. 그동안 책을 읽을 여유가 없었다고 말하기엔, 최근에 너무 여유롭게 지내서 변명의 여지가 없네요. 보다 다독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앞으로 더 노력하겠습니다!
2. 저는 책 편식이 심한 편입니다. 주로 담백한 에세이, 무엇보다 이야기 형태인 소설책을 좋아합니다. 확실히 책을 가려 읽으니까 쌓이는 지식도 불균형 그 자체더라구요. 어떤 분야는 너무 떨어지고, 어떤 분야는 지나치게 풍부합니다. 특히 요즘엔 상식이 떨어지는 느낌을 적극 실감해서, 최대한 책 편식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진로도 그렇고, 최근 관심이 가장 많은 마케팅 관련 서적도 읽으려고 합니다. 그나마 접근이 쉬울 것 같아서요. 여기서 더 나아갈 수 있다면, 경제나 과학 관련 서적도 읽고 싶습니다. 물론 완독할 자신은 없지만, 서점 갈 때 한번 기웃거리기라도 해 보려구요.
3. 이 책은 카피라이터 정철이 쓴 책입니다. (정철어학원의 그 정철이 아닙니다.) 애인이 빌려준 책인데, 제가 글쓰기를 좋아하는 걸 알아서 그런지, 글 쓰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가져다주더라구요. 재미있어서 그냥 술술 읽힌다며 어쩐지 많이 들떠 있는 모습이길래, 데이트하고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바로 펼쳐 봤습니다. 역시 처음부터 흥미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꼭 리뷰를 쓰고 싶었어요. 저는 예전부터 블로그에 책 리뷰를 하게 되면, 제가 반한 문장들을 최대한 다 적어서 남기리라 다짐했었는데, 그걸 오늘 해 보겠습니다! 참고로 작가의 다른 책들도 신선해 보였어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아니, 기회를 만들어서 꼭 읽도록 하겠습니다. (카피책 빌려 읽어 죄송합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한 번만 봐주세요..!)
4. 저는 책을 읽을 때 굉장히 꼼꼼하게 읽습니다. 진짜 맨 처음부터 맨 끝까지 읽습니다. 샅샅이, 한 글자도 남김없이 읽습니다. 언제 초판이 출간되었는지부터, 출판사의 다른 책 소개까지 전부 다 읽습니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이해가 될 때까지 곱씹고, 감명 깊었던 부분은 나중에 따로 메모까지 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모르는 단어는 사전을 이용해서 꼭 찾아보고 넘어갑니다. 참 피곤한 성격이죠? 그런데 다른 건 몰라도 프롤로그, 여는 글은 정말 꼭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가가 어떤 생각으로 글을 썼고, 어떤 마음으로 읽어 주길 바라는지, 정말 중요한 것들이 들어 있잖아요. 에필로그, 마치는 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글을 마쳤고, 독자는 앞으로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그 방향성을 제시해 주기 때문에 그걸 남기고 책을 덮는 건 정말 아쉬운 일인 것 같습니다. 카피책의 경우, 프롤로그 시작 전에 딱 두 줄이 적혀 있습니다. 작가가 꼭 전하고 싶은 말이자, 이 책을 요약해 놓은 듯한 말입니다. "쓰십시오. 쓰지 않으면 잘 쓸 수 없습니다." 참 인상적이지 않습니까?
5. 카피책은 전체적으로 읽기 편한 글입니다. 독자를 위한 글이죠. 글을 쓸 때면 늘 주절이가 되고 마는 저에게도 딱 맞는 책입니다. 역시 카피라이터, 라고 말하고 싶지만, 작가의 멋진 글쓰기 능력 덕분이라고 덧붙이고 싶습니다. 문장이 짤막짤막하고 한번에 쉽게 다 읽힌다는 것은, 독자 입장에서는 그저 좋은 일이지만 작가 입장에서는 정말 어려운 일이니까요. 근데 쉽게 읽히는 것뿐만 아니라, 경쾌하게 읽힙니다. 그냥 피식 싱거운 웃음이 나기도 했고, 동네 아저씨처럼 푸근한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현실적인 메시지가 주를 이뤄서, 잘 쓴 카피 한 줄 한 줄이 자근자근 끊겨서 쏙쏙 이해되는데 그게 참 명쾌합니다. 굉장히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책입니다. 물론, 재미있는 것을 넘어서 진지한 의미를 담은 카피도 많습니다. 책을 처음부터 읽어 보면 어떤 느낌인지 아실 겁니다!
6. 가끔 정치적 뜻을 담고 있는 카피와 문장이 불쑥 튀어나와 괜히 제가 눈치를 본 적도 있습니다. 보통 책에서는 특정 후보를 지지할 때 A씨 혹은 김모씨 등으로 표현하지 않나요? 여기엔 막 실명이 다 나옵니다. 정말 놀랐습니다. 아무래도 자신이 썼던 실제 카피들을 예시로 들어야 하기 때문에 솔직하게 다 드러낸 것 같아요. 근데 그냥 이런 정치적 의사 표현에 익숙하지 않아서 뜨끔했던 거지, 딱히 불편하진 않았습니다. 그저 '프로불편러'들이 뭐라고 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 아닌 걱정을 조금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을 예상했는지, 나중에 작가가 알아서 그 얘기를 꺼내 줬습니다. 좋았어요. 사실 정치 성향이라는 것도 개인의 뜻인데, 책에 다 나온다고 해서 이상할 일은 아니죠. 덕분에 제가 가진 편견을 많이 깰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7. 이 책은 실습도 시킵니다. 작가가 좋은 말로 할 때 하라고 해서, 저는 했습니다. 옆에서 잔소리하는 것 같아서 키득키득 웃었네요.
8. 잘 쓴 카피만 보여 주는 게 아니라, 어색하거나 못 쓴 카피도 보여 줍니다. 자신에게 일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분야의 카피도 소개해 줬습니다. 이 부분에서 정철이라는 사람이 어떤 카피를 잘 쓰는지 확실히 느껴졌어요. 좋아하고, 잘하는 것은 역시 티가 나는 것 같습니다.
9. 카피의 힘은 참 대단합니다. 작가가 쓴 수많은 카피들을 보면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하고 많이 감탄했어요. 창의적이고 독특하고 웃긴 카피도 많았지만, 무언가 진중한 의미를 담아 잔잔한 울림을 주는 것들도 많았습니다.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10. 작가는 글을 쓸 때 '의미'와 '재미' 두 가지를 생각한다고 합니다. 이게 참 공감이 가서 아직도 마음속에 계속 맺혀 있습니다. 의미가 있거나, 재미가 있거나, 어찌 됐든 가장 중요한 것은 카피가 카피라이터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누구나 쓸 수 있다는 것이죠. 이건 작가의 마무리 멘트입니다. 글을 제대로, 잘 쓰고 싶다면, 카피책을 한번 읽어 보세요. 추천합니다. 근데 일단 팁을 다 떠나서, 무조건 많이 쓰라고 할 겁니다.
23p
잘생겼다 → 장동건 동생일 거야
예쁘다 → 김태희 스무 살 때
많다 → 삼십육만 칠천팔백 개
꼼꼼하다 → 손톱 열 개 깎는데 꼬박 20분을 투자한다
이렇게 쓰십시오. 이렇게 구체적으로 쓰십시오. 막연한 카피, 추상적인 카피, 관념적인 카피와 멀어지려고 애쓰십시오. 구체적인 카피는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줍니다.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진다는 건 카피와 함께 사진 한 장을 찰칵 찍어 배달해준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더 생생하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카피에 힘이 붙겠지요.
카피 쓸 땐 연필로 쓰지 말고 송곳으로 쓰라고
두루뭉술하게 쓰지 말고 송곳으로 콕콕 찔러 쓰라고
무딘 카피는 허파를 건드려 하품이 나오게 하지만
뾰족한 카피는 심장을 찔러 탄성이 나오게 한다고
심장을 깊숙이 찌르려면 송곳을 쥐고 카피를 쓰라고
32-3p
익숙한 것은 편안합니다. 편안해서는 눈을 끌 수 없습니다. 어딘가 불편해야 합니다. 불편해야 눈이 모입니다.
42p
낯설다. 나는 이 말을 좋아합니다. 광고, 크리에이티브, 카피에 대한 정의가 수없이 많겠지만 내게 이것들의 정의를 묻는다면 나는 낯설게 하기라고 짤막하게 대답합니다. 낯설게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낯선 조합입니다. 익숙한 것에서 가능한 멀리 달아나는 것입니다.
78p
먼저 《학교 밖 선생님 365》에 나오는 또 다른 글 <못>을 봐주십시오. 만약 이 글을 다른 나라 말로 번역해낼 천재가 있다면 나는 그분을 평생 업고 다닐 수도 있습니다.
넌 못해.
넌 못할 거야.
넌 못할 줄 알았어.
가슴에 못을 박는 말입니다.
못은 가슴이 아니라 벽에 박는 물건입니다.
말장난으로 재미를 주면서도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은 글을 생산하십시오.
80p
지난 강원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최문순 후보. 그의 슬로건은 [오직 강원!]. '그래, 그는 고지식할 정도로 한결같은 남자야! 정말 강원도 감자같은 남자야!' 하는 공감을 불러일으키려고 만든 슬로건입니다. 나는 이 슬로건과 함께 사용할 캐치프레이즈로 이런 카피를 썼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강원도
[도]라는 마지막 음절로 리듬을 살린 말장난입니다. 쉽습니다. 입에 잘 붙습니다. 슬로건의 의미를 재미있고 경쾌하게 풀어 전달합니다.
93p
어쩌면 카피라이터는 아무도 모르게 광고에 자신의 철학과 인생과 욕심을 녹여 넣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99p
카피를 쓴 다음엔 그곳에서 군더더기를 찾아 걷어 내는 일을 하십시오. 그래야 글이 간결해지고 조금이라도 짧아집니다. 걷어 내야 할 것은 단어 하나일 수도 있고 조사 하나일 수도 있고 한 구절일 수도 있고 한 문장 전체일 수도 있습니다. 문장부호일 수도 있습니다. 광고 한 편 전체일 수도 있습니다. 카피라이터는 연필을 드는 시간만큼 지우개를 들어야 합니다.
100p
초벌 카피를 쓸 땐 하고 싶은 얘기를 충분히 쓰십시오. 그런 후 충분히 걷어 내십시오.
102p
접속사는 가능하면 치워버리십시오. 불필요한 접속사 하나가 카피 호흡을 방해하고 복날 강아지처럼 카피를 축 처지게 만듭니다.
104-105p
일단 카피를 쓰고 나면 지우개를 들고 다시 읽으십시오. 틀림없이 걷어 낼 구석이 보입니다. 한 번 걷어 낸 후 또 들여다보십시오. 또 군더더기가 보입니다. 이렇게 두 번 세 번 지우는 일을 해야 합니다. 카피라이터는 쓰는 사람이면서 지우는 사람입니다. 카피는 송곳으로 쓰라 했습니다. 송곳을 다 사용했다면 그다음 손에 들어야 할 것은 스푼입니다. 스푼을 들고 아이스크림 퍼내듯 군더더기를 퍼내야 합니다. 송곳과 스푼 두 가지 무기를 다 사용한 후에 카피가 끝납니다.
또 군더더기를 솎아 내려고 반복해서 글을 들여다보면 그 전엔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변화를 원하신다면]이라고 쓴 카피. 처음엔 당연히 그렇게 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같은 카피를 세 번쯤 들여다보니 [변화에 찬성하신다면]이라는 표현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자리에서 고칩니다. 군더더기 찾다 생각지도 않은 덤을 얻는 셈입니다. 즉 반복하여 들여다보기는 자연스럽게 퇴고 역할도 한다는 뜻입니다.
109p
훔치십시오. 법정에 피고인으로 설 염려만 없다면 뭐든 좋습니다. 훔쳐 와 아이디어 재료로 사용하십시오. 모방하고 패러디하십시오. 법전, 역사, 문학, 노래, 책, 연극, 영화, 전설, 속담, 격언, 논문, 개그, 드라마, 만화, 뉴스, 광고, 그림, 사진, 조각, 아니 화장실 벽에 붙은 낙서도 좋습니다.
115-6p
지금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한 분은 눈 크게 뜨고 주위를 360도 둘러보십시오. 형광등도 보이고 연필깎이도 보이고 벽시계도 보이고 지우개도 보이고 타이레놀도 보이고 마우스도 보이고 명함도 보일 것입니다. 어떤 놈이 당신에게 아이디어를 던져줄지 모릅니다. 멀리서 찾지 말고 당신 주위부터 살피십시오.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정보나 아이디어 80퍼센트는 당신 가까이에 있다고 합니다.
117-8p
세상에 없는 것을, 당신에게 없는 것을 만들어내겠다고 덤벼들면 오히려 뒤로 나자빠지기 쉽습니다. 세상 그렇게 만만하지 않습니다. 당신 그렇게 대단하지 않습니다. 먼저 어깨에서 힘을 빼십시오. 머리에서 힘을 빼십시오. 힘을 빼고 연필을 드십시오.
카피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입니다. 영어로 말하면 make가 아니라 search입니다.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우리가 늘 쓰는 말, 우리 곁에 늘 놓인 말 중에서 지금 내가 표현하려는 것에 딱 맞는 말을 찾는 것입니다. 여기저기 두리번두리번 살피다 '이거다!' 하는 것을 발견하면 그것을 그대로 들고 와 종이 위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이게 카피입니다. 손이 아니라 눈으로 쓰는 것입니다.
119p
힘은 센 것, 강한 것, 시끄러운 것에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다른 것에서 나옵니다. 모두가 컬러일 땐 조용한 흑백이 눈에 띕니다. 모두가 헤비메탈일 땐 잔잔한 재즈가 귀에 들립니다. 강한 것보다 강한 것은 다른 것입니다.
272p
카피는 문자라는 기호를 사용하여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비주얼은 어떤 일을 할까요? 비주얼도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다만 그 기호가 글자가 아니라 그림이나 사진인 것입니다. 카피가 이야기하는 것을 비주얼이 반복할 필요도, 비주얼이 이야기하는 것을 카피가 재탕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건 1+1=1이 되는 결과입니다. 원래 값인 2에도 못 미치는 결과입니다. 광고는 카피 1과 비주얼 1이 만나 3을 만들어내는 작업입니다.
358p
나는 글을 쓸 때 두 가지를 생각합니다. 의미와 재미. 의미가 있거나 재미가 있거나. 둘 다 아니면 버립니다. 의미와 재미를 다 갖춘 글이면 더 좋겠지만 그게 어려울 땐 하나라도 붙들려고 애씁니다. 당연합니다. 의미도 재미도 없는 글을 누가 읽어주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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